
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베토벤 연주의 인의예지
얼마전 잠시 소개한 바 있지만, 윤세욱 선생님께서 주신 MC 카트리지용 트랜스가 지금껏 경험한 어느 것보다도 마음에 든다. 특히 악기의 독립적인 소릿결과 표현의 변화를 잘 알게 해주는데다가 전반적으로는 음상이 꽉 차있고 흠잡기 어렵게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더 자세히 추켜세우자면, 독주 부분과 두어가지 악기가 함께 아우러질 때 느껴지는 명료함과 사실감은 마치 눈앞에 잘 조리된 음식의 향기와 같이 번져나온다.
오늘 트랜스를 새 케이스에 옮긴 기념으로 베토벤의 곡들을 각각 다른 연주자들의 구성으로 들어보기로 했다.
메뉴힌과 켐프의 이중주 "봄 소나타"
두 악기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쫄깃쫄깃하고 아름답게 전개된다. 바이올린은 주로 봄의 악상에 관련된 진행을 하고 피아노는 봄을 감싸는 대지와 같은 느낌이다. 앞뒤를 가리기 어렵게 모두 뛰어나지만 잘 들어보면 바이올린이 앞서기를 하고 피아노는 바이올린에게 추임새를 주며 한치의 빈틈과 어리석음이 없는 화답을 하고 있다. 매우 아름다운 감성이 쉼없이 흘러가는 표현의 뒤에 치밀하고 지성적으로 계획된 조율이 느껴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은 "지"의 작위를 주겠다.
그뤼미오와 하스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7번과 10번
7번에서는 두 악기가 각자 스스로 화답하며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진행되는 느낌이고, 10번에서는 바이올린이 제시한 물음에 피아노가 대답하거나 배경을 제시하는 듯 진행된다고 본다. 두 연주가 모두 개인적 표현보다는 곡 자체의 표현과 전달에 매진하는 점에서 매우 겸손하게 느껴질 뿐아니라, 두 연주자 사이에서도 자신의 심지는 흐트러짐 없이 지키면서도 상대편의 표현을 더욱 존중해주는 듯한 보살핌과 자기 낮춤의 모습이 전해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느껴지는 아름다움도 기교가 앞을 가리지 않는 단정하며 순수한 표현이다.
"인의예지" 중에선 "예"의 작위에 해당한다.
루빈쉬타인과 쉐링의 크로이처 소나타
루빈쉬타인의 뛰어난 기교는 때로 너무 튀어나오기도 하기에 평소 단골 연주자는 아니다. 반대로 쉐링은 기교보다는 정직함이 돋보이는 연주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주는 루빈쉬타인의 기량을 멋지고 아름다운 표현의 바탕으로서 새로이 인식하게 하며, 쉐링의 평소 겸허한 연주 뒤에 숨어있는 기량의 고고함을 알게해준다.
자신이 믿는 아름다움에 대한 확신을 자신있게 주장한다는 점에서 "의"의 작위를 주노라.
삼중 협주곡 - 안다, 슈나이더한, 푸르니에 - 지휘 프리챠이
곡 전체에 거쳐 악상과 스타일의 변화가 무쌍히 진행되는 동안 세 악기 또는 두 악기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나가 되었다가 이어서 독주로 각자의 목소리를 마음껏 과시하고, 곧 이어 다시 하나가 되곤 하며 빚는 감동의 마법은 "삼총사"의 "One for all, all for one!"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완벽하다는 표현 밖의 다른 평이 생각나지 않는 연주, 대가들의 손에서 빚어지는 "천의무봉"의 연주, 모든 요소가 완성되었기에 개별적 요소에 대해서 평을 할 수 없는 연주라 평하고 싶다.
어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품는 가장 큰 것이자 최고의 완성이기에 "인"의 작위는 삼중 협주곡에 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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