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턴테이블 중 널리 쓰일 뿐아니라 명기로 인정받는 두 가지를 간략히 소개하고
직접 사용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두 턴테이블의 공통점은 판이 올려지는 플래터를 고무 바퀴인 아이들러가 구동한다는
점과 선풍기 등에서 쓰이는 모터와 같은 종류인 유도 모터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생산되는 벨트 드라이브나 다이렉트 드라이브의 방식에 비해
구동력이 크고 플래터의 공진을 아이들러가 접촉하여 억제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진동과 속도 변화의 안정을 꾀하려 3.5-4.5킬로그램 정도의 무거운 플래터를 쓰고
있는바 관성이 커서, 바늘의 진동에 대한 기준점 역할도 충실히 수행합니다.
단점으로서는 모터가 크고 회전 속도가 높아서 모터의 진동이 주는 영향이 큰데, 특히
301의 모터 축과 플래터 사이는 완충력이 크지 않은 아이들러로 직결되어 모터 축의
진동이 플래터에 즉각 전달됩니다. 유도 모터는 전압과 부하에 따라 속도가 변하기
때문에 정속도를 유지하려면 전압 안정기를 사용해야 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두 턴테이블은 모두 와전류 감속 장치를 써서 미세 속도 조정을 합니다. 도체가
자기장 내에서 움직이면 도체 내부에서 소용돌이 전류가 생기고 그 소용돌이
전류의 결과로 발생한 자기장이 도체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301에는 모터의 축에 알미늄 원반이 붙어 있고 속도 조정 놉을 돌리면 자석이 원반에
더욱 가까워져 부하를 주고 속도를 낮춥니다.
TD-124에서는 모터와 아이들러 사이의 감속 알미늄 풀리와 자석의 거리를 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감속장치에 의해 항상 일정한 부하가 걸린 상태로 움직이므로
전원 전압만 안정되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안정된 속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가라드 301
역사와 구조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http://www.sorishop.co.kr/board/special/board_view.html?s_key=&s_field=&category=&page=1&no=107
를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사용했던 301은 초기에 생산된 헤머톤 페인팅 된 모델을
일본에서 다시 종합 정비하고, 내부에 납을 부어 만든 플린스 (베이스라고 흔히 부르는데
플린스가 정식 명칭입니다.)에 장착한 고급품으로 오토폰 RMA-309 톤암이 장착되어
있어서 오토폰 SPU A 타입 카트리지를 써야 합니다.
모니터링은 다인오디오 MSP-220과 알텍 604-8G로 했고 엠파이어 698에 장착된
오토폰 MC-30과 덴온 DL-103과 비교했습니다.
첫 번째 두드러진 차이는 저역에서의 단단하고 호쾌함입니다. "으르릉"이라 들리던
소리는 "그르릉"하고 힘찬 에너지가 느껴지고 음의 질감도 매끈하면서 단단하게
느껴집니다. 전체적인 소리의 음상도 더욱 크고 앞으로 다가오며 더욱 팽팽한 느낌이
됩니다. 첼로의 느낌은 더욱 도도하고 같은 음정에서도 현을 팽팽하게 조인 듯 나오고,
파바로티의 "저 불길을 보아라"의 고역은 가슴을 후비듯 튀어나옵니다. 그러나 고역의
섬세함과 안정성은 떨어집니다. 제 동생은 엠파이어에 붙인 DL-103의 소리가 더욱
예술적이고 분위기 있다고 합니다. 당시 지인의 집에도 같은 턴테이블이 있어서 가야금
산조를 모니터 레드를 장착한 타노이 오토그래프로 들어보았는데, 그 팽팽한 느낌으로
눈앞에 현 하나하나가 춤추며 너울거리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용하던 것은 그릉그릉하는 모터와 아이들러에서 나는 럼블이 상당히 들렸었는데,
지인의 집에 있는 신도연구소 개작품에서는 잡음을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잘 다듬고 개조한 것은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지라 귀동냥으로만
그치고, 같은 301도 개조와 정비 상태에 따라 동작 상태와 가격에 심각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소리에 있어서 같은 성향의 변화를 Rek-O-Kut의 론다인과 QRK 등의 다른 아이들러
드라이브 턴테이블에서도 느꼈으니, 아이들러 드라이브의 성향이 그러한가 보다
하고 있습니다.
2. 토렌스 TD-124
캐나다에 와서 엠파이어 698을 구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우선 토렌스 TD-165를
구해서 아쉬운 대로 듣다가 TD-124를 구한다고 광고했더니 연락이 와서 단돈
$150에 상태 좋은 TD-124를 구해서 들은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301도 마찬가지이지만
TD-124는 출렁거림이 없어서 판을 얹고 내리는 조작이 편리하고 모터가 강력해서
회전 속도가 바로 올라가는 것이 장점입니다. 모터가 바로 아이들러를 구동하고
아이들러가 플래터를 돌리는 301과 달리 TD-124의 모터는 벨트를 통해 알미늄
소재의 감속 풀리를 돌리고, 감속 풀리의 축이 아이들러를 돌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들러가 플래터를 돌립니다. 그래서 모터 축의 진동은 벨트가 거의 흡수합니다.
TD-124의 플래터는 4.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주철로 되어 있고 그 위에 고무판이 부착된
알미늄 덮개를 따로 씌우게 되어 있습니다. 주철이 MC 카트리지의 자력에 반응해서
카트리지를 끌어당기는 문제를 피하고자 MKII 모델은 3.5킬로그램의 알미늄 플래터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TD-124에는 MC 카트리지를 쓸 수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자력 흡인력을 합해서 4그램이 나가도록 조정해서 지금껏 문제없이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러 표면의 불균일에서 나오는 잡음을 들을 수
있었으나 아이들러를 정밀 제작한 사제 교환품으로 갈아 끼우고 신세틱 윤활유를
주입한 이후엔 거의 잡음을 느낄 수 없습니다.
TD-124의 장점은 모든 면에서 정밀해서 믿음이 가고 상태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리에 있어서도 전체적인 균형이 좋고 골고루 중립적으로서, 남다른 성향이 적고
정확히 표현되는 것을 큰 장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잘 정비된 상태에서는
암이나 기타 기계적 요소의 댐핑, 진동 상태의 변화 등이 매우 예민하게 나타납니다.
301과 같은 두드러지고 힘찬 저음은 아니지만, 엠파이어 698보다는 정숙하고
무게있으며 단아한 중저음이 나오고, 고음도 경박함 없이 중립적이고 섬세하게
나옵니다. 301에서는 무대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에 비해서 TD-124의 무대는
그보다 다소 뒤로 물러나는데, 그렇다 해서 해상도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지금껏 써 본 턴테이블 중 무엇을 표준으로 생각하는가 스스로 묻는다면,
저로서는 단연 TD-124입니다.
3. 정리
301이나 TD-124나 모두 매력 있고 좋은 턴테이블입니다. 만약 현악과 성악이
저의 주 음악이거나, 웨스턴 일렉트릭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은 권위적 표현을
찾는다면 301에 더욱 큰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편식이 없이
가리지 않고 여러 종류의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종류의 장치를 평가해야 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TD-124에 더욱 큰 만족과 신뢰를 느낍니다. 소리에 대해 한마디로
축약하면 301에서 나오는 소리는 원래의 소리보다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하고
야무지게 나온다면 TD-124에서는 원래 마이크에서 받아들인 소리가 그렇구나
하는 느낌으로 나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301이나 TD-124이 제조된 지 50년에 이르는 골동품이라는 점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사용이나 관리에 따라 현재의 품질에 큰 차이가 있으며
상태에 따라서는 사용이 불가능한 정도의 물건도 있으니, 위의 평가는 상태가 좋은
기기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을 수 있는 전문가가 복원한
것을 구한다면 요즘 나오는 어느 턴테이블보다도 쓰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골고루 안겨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턴테이블은 아직도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서
많은 업그레이드나 교환 부품이 여러 사람에 의해 제작되고 있습니다.
TD-124의 경우 업그레이드 된 스테인레스 플래터, 축받이, 축, 아이들러,
완충 고무 등을 이베이를 통해 구할 수 있고 정비 매뉴얼이나 경험 자료도
인터넷에 흔하게 떠돌아다녀서, 기본적인 관심과 손재주가 있으면 손수 정비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