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앰프 횡설수설 - 진공관 대 트랜지스터

1. 진공관과 트랜지스터, 무엇이 나은가?

증폭기에서의 신호 처리 작용만 보면 당연히 진공관이 낫습니다. 간략화하여 예시하면, 삼극관의 입출력 특성에서 입력이 1일 때 출력이 2, 입력이 2가 되면 출력이 4에 근접하여 입출력 비율이 꽤 일정합니다. 반면, 트랜지스터는 입력이 1일 때 출력이 2, 입력이 2로 바뀌면 출력이 5, 입력이 3이 되면 출력이 9가 되는 등 입출력 비율이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트랜지스터의 비 직선성이 출력 파형의 왜곡이 되며, 이를 바로잡고자 트랜지스터 앰프에서는 많은 부귀환을 겁니다. 부귀환이란 출력의 소정 비율을 뒤집어 입력에 합쳐주어 입출력 신호가 커질수록 증폭기의 이득이 커지는 성질을 다스리고 트랜지스터 자체가 발생한 잡신호를 상쇄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미 고온에서 동작하는 진공관은 주변 온도의 변화에 대해 동작 특성의 변화가 적은데 반해, 트랜지스터는 온도 변화에 따라 동작 곡선 전체가 마구 바뀝니다. 그 결과 온도 변화에 따른 불안정함을 보완하기 위한 열 보상 회로가 꼭 필요합니다. 부귀환과 열 보상 등으로 트랜지스터가 가진 문제를 극복할 수 있지만, 완벽한 부귀환과 열 보상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므로, 원래부터 문제가 적은 것보다는 못 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공관은 구조물이 크고 물리적으로 제작되는 데 비해 트랜지스터는 구조적 크기가 작고 광학적, 화학적 공정에 의해 제조되다 보니 일반적으로 개개의 편차가 진공관보다 큽니다. 이러한 편차는 실제 제작 시에 있어서 원래 설계 시의 예상과 다르게 동작할 가능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여자에 비유하면 진공관이 천연 미인이라면 트랜지스터는 날 때부터 못 생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천연 미인은 가꾸지 않아도 매력이 있고, 조금만 가꿔도 때깔이 나는 데 비해, 원래 못 생긴 얼굴은 꽤 투자를 해서 고쳐야 천연 미인에 근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좋은 요즘엔 좋은 외과 의사를 만나 아주 잘 고치면 감쪽같이 좋은 미인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흔히 말하듯 진공관 앰프는 대충 설계/제작해도 웬만한 소리가 나지만 트랜지스터 앰프는 설계와 제작에 따라 품질에 매우 큰 차이가 납니다.

2. 진공관의 단점

세상이 의례 그러하듯, 진공관이 무조건 유리한 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소리를 내려고 움직여야 하는 스피커의 보이스 코일은 가벼워야 유리하고, 따라서 코일의 권선이 많으면 불리합니다. 즉 스피커는 비교적 낮은 임피던스를 갖게끔 되어 있습니다. 진공관은 진공 내에서 전자가 이동할 수 있도록 고전압 저전류로 동작해야 하는 바, 낮은 임피던스의 스피커를 구동하는데 필요한 저전압 고전류로 바꾸려면 변압기가 필요합니다.

변압기는 간단한 계산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철심 내에서, 자기의 방향이 바뀔 때에는 추가적인 자력이 필요하여 문턱 효과(threshold)가 생기고 자기가 포화 상태로 오를 때와 내릴 때의 변화 상태가 다릅니다.(hysteresis) 그뿐 아니라 공간적 위치 차이에 의해서도 일차 코일로부터 이차코일에 미치는 자계의 영향력이 주파수에 따라 바뀝니다. 즉 신호 강도의 변화와 주파수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동작하는 변압기가 진공관 앰프에선 꼭 필요한데, 그러한 변압기의 제작엔 철심 등의 소재 개발과 제조에 많은 비용이 들고 주파수 특성을 개선하기 위한 샌드위치 감이 등의 권선 과정도 상당한 수작업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좋은 변압기를 만들기에는, 현재의 시장 수요가 매우 적고 자동화에 한계가 있어서 큰 비용이 듭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진공관은 고전압에서 동작해야 하는데, 진공관 주위의 수동 소자 즉 저항, 콘덴서 등의 부품의 내전압이 높아야 합니다. 내전압이 높은 부품은 절연을 위한 절연물이나 간극의 사이즈 등의 요인으로 부피가 크며 가격도 비쌉니다.

진공관은 금속체의 극판들을 진공 유리관 내에 물리적으로 배치한 구조이므로 충격이나 진동에 약하고, 방열이나 내압을 위해 극판의 크기나 물리적 간격을 유지해야 하므로 작게 만들 수 없습니다.

진공관의 음극은 전자 방출을 위해 뜨거워야 하는 데, 이를 위해 히터에 전기를 흘려야 하므로 동작 조건만을 위해서도 에너지를 꽤 소비합니다.

3. 트랜지스터의 장점

트랜지스터 역시 단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대충 앞에서 말씀드린 진공관의 단점이 트랜지스터의 장점이 되겠습니다. 트랜지스터는 저전압 고전류 동작이 가능하므로 출력 변압기 없이 스피커를 구동할 수 있고, 크기가 작고, 물리적으로 견고하며, 에너지 효율이 좋고, 증폭기 구성을 위한 주변 수동 소자의 가격이 적게 든다는 장점 등이 있습니다. 이런 장점은 대량 양산 체제와도 어울려서 진공관 증폭기에 비해 낮은 가격에 제작할수 있는 산업상의 이점이 있습니다.

4. 증폭기에서 트랜지스터의 단점 극복

음질 지향적으로 생각할 때, 트랜지스터의 단점은 극복될 수 있는가?

대답은 '예.'와 '아니오.'가 공존합니다.

근래의 트랜지스터 증폭기는 대부분 초단이 차동 증폭 회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차동 증폭기란 입력점이 출력에 대해 정위상인 것과 부위상인 것 두 개며, 정위상 입력 전압에서 부위상 입력 전압을 뺀 차이만 증폭하도록 구성된 증폭기입니다.

예를 들어 출력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신호를 부위상 입력에 인가하면 증폭기는 정위상 입력의 10배까지밖에는 증폭을 못 합니다. 출력이 10배에 도달하는 순간 부위상 입력에 인가된 전압의 크기가 정위상 입력에 인가된 신호와 같아져 두 입력의 차이가 없게 되고 증폭이 정지되기 때문입니다.

차동 증폭기에서의 부귀환은 이렇게 입력과 출력을 비교하는 개념으로 이루어지는 바, 위상이 바뀐 출력 전압이나 전류를 쪼개어 입력 회로에 대충 더해주던 과거의 증폭 회로보다 정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글 처음에 예시하였듯, 출력이 입력에 대해 항상 일정한 배수로 나온다면 입력과 출력은 완벽한 닮은 꼴이 되며, 이를 '증폭 상의 왜곡이 없는 상태'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하듯 정밀한 부귀환과 더불어, 효과적인 열 보상, 트랜지스터의 선별적 사용 등등은 증폭기에서 트랜지스터의 본질적 약점을 거의 극복하게 해주며, 잘 설계된 트랜지스터 앰프는 진공관 증폭기보다 전반적인 비교 우위에 있습니다.

제가 표준기로 쓰는 자작기를 손님이 가져온 자디스 트랜지스터 앰프를 최상 컨디션으로 튜닝된 다이나코 마크3 나 매킨토시 MC60, 오디오 리서치 클래식 60 등의 앰프와 스피커를 바꾸며 동일 조건으로 시청 테스트했을 때, 서로간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위에서 '아니오.'라는 대답도 했는가?

트랜지스터 증폭기에는 증폭 소자인 트랜지스터 자체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강한 부귀환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 이미 설명되었습니다. 스피커의 진동판이 앞으로 튀어나오도록 전기 신호가 인가된 다음에는 자체의 복원력으로 되돌아갑니다. 이렇게 자체 복원될 때 자기장에서 움직이는 보이스코일은 스스로 전기를 발생하는데, 이 전기는 증폭기의 부귀환 회로에 의해 감지되고, 증폭기의 출력은 보이스코일에서 나온 신호를 상쇄하여 제로로 만들 수 있도록 반대 전기를 발생시켜 스피커 진동판의 자체 복원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자체 복원에 의한 음파 발생도 억제되지요. 이러한 성질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을 수치화한 것이 '댐핑 팩터'인데 스피커의 임피던스를 앰프의 출력 임피던스로 나눈 값입니다.

댐핑 팩터에 관계하는 변수는 여러 가지지만 부귀환이 그 중 가장 큰 요소입니다. 스피커 진동판의 최종적 움직임은 증폭기로부터 스피커에 공급된 전력에 의한 움직임과 스피커 자체의 복원에 의한 움직임이 주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댐핑 팩터가 큰 증폭기가 좋은 것처럼 광고하지만 댐핑 팩터가 작은 경우, 스피커 진동판의 진동 자유도가 늘어나서 악기의 떨림판과 같은 성향이 생길 수 있고 배음이 늘어납니다. 이러한 음색의 변화가 스피커의 성향이나 시청자의 취향에 따라선 좋은 변화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증폭의 왜곡이 낮은 데 비해 댐핑 팩터가 낮은 예로 대표적인 것이 부귀한 없는 삼극관 싱글 엔드 증폭기입니다. 싱글 엔드 증폭기는 출력 트랜스에 항시 직류 바이어스가 걸려 있는 고로 철심의 자기장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지 않으므로 증폭기의 크로스오버 또는 철심의 문턱 효과에 의한 왜곡이 없는 장점도 있습니다. 일본의 증폭기 설계자인 쿠보다 씨는 한 때 트랜지스터 증폭기의 댐핑 팩터를 낮추어 싱글 엔드 진공관 증폭기의 효과를 얻고자, 부귀환을 앰프의 최종단 출력이 아닌 드라이버단에서 끌어오는 방법을 제시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리가 가벼운' 증폭기가 되어 큰 호응을 얻지 못 했습니다.

트랜지스터로는 이러한 삼극관 싱글 엔드 증폭기의 특색이 생기게하기 어려운 바, 적당한 배음이 발생하기를 원하는 경우라면 원 물음에 대해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게 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