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일 일요일

올 시즌의 연어 낚시

너른 바다를 한 바퀴 돌고 자라 이제는 알을 낳으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낚는다.

장애물과 장애물 사이 다소 느리게 연결된 물골에 신경을 바짝 세워 미끼를 흘린다.

세차디세찬 강물은 바위와 자갈을 험하게 넘어 거품과 물방울을 뿜으며 용트림한다.
그 거친 흐름의 밑 걸림에 추와 바늘을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미끼가 바닥을 스칠 듯
곡예 하며 흘러가게 찌 낚시를 한다.

이토록 험한 강이라도 바닥의 흐름은 표면의 흐름보다 훨씬 느리다. 그래서 표면의
흐름만 보고 흘리면 미끼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아 고기가 잘 물지 않거나, 미끼와
낚싯대 사이의 줄이 팽팽히 유지되지 않아서 어신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뿐인가? 조금만 더 못하면 고기를 걸기는커녕 바닥에 걸어 뜯긴 바늘과 추를 고쳐
매는 데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같은 장소에서 낚시하더라도 바닥 흐름의 속도에 맞춰 장애물을 피해가며 낚싯대 끝에서
바늘 끝까지 낚싯줄이 긴장된 상태로 흘러가도록 하는 감각과 기술에 따라 고기를 거는
승부가 판가름난다.

찌의 움직임을 보고 어신을 감별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정확하다면 대부분은 손의
감촉이 보는 것보다 빠르다.

손에 전해지는 심상치않은 느낌에 맞춰 재빨리 채었더니 강한 몸부림이 뇌와 심장에
타격과 전율로 다가온다.


거는 것이 한 가지라면, 이런 급류에서 걸은 고기를 끌어올리기란 전혀 다른 또
한 가지의 일이다.

고기의 필사적인 몸놀림에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팽팽하면서도 간신히 줄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의 얇은 여유를 주며 빠른 걸음으로 고기를 따라가며 줄다리기를 한다.

귀에 오로지 들리느니 당장 멈출 듯 방망이질해대는 내 심장 소리뿐이다.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미물로만 보이던 고기도 별별 꾀를 다 부리고, 오랜 싸움으로
낚싯줄이 헐어 있어 더욱 많은 긴장이 필요하며, 혹시나 고기를 놓칠까 하여 빨리
끝내고 싶은 조바심도 멀리 참아내야 한다.


1960년대 영국에서 제조된 것을 나름대로 부품을 깎아 손수 튜닝한 릴은 어느
메이커의 상품보다도 믿음직스럽다. 감는 속도를 높이는 기어나 제동을 주는
장치인 드랙이 없이 간단하므로 고장의 우려는 없으나, 모든 것을 기계 장치의
도움이 최소인 상태에서 기량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고기의 움직임에
즉각적인 맞수를 두어 대응해야 하는 긴장감과 즐거움이 더하며, 성공에 대한
스스로 만족도도 여느 장비를 쓸 때보다 높다. 이 릴에서 보이는 축 고정 덮개는
원래 플라스틱이었는데, 알루미늄을 선반으로 직접 깎아서 더욱 정밀하게 개량한
것이다.



이 날 낚아올린 여러 마리 연어 중 두 마리인데, 큰 것은 약 90cm 정도이다.


자연이 베풀어 준 모든 것을 최고의 정성을 들여서 갈무리하고 고마움을 잊지
않으며 먹거나 쓰는 것은 포획자의 양심이다.

살은 gravlax라 하는 스칸디나비아식 향료를 곁들인 절임을 했고, 남은 머리, 뼈,
가죽은 튀김을 했다. 집에서 직접 빚은 포도주와 맥주를 곁들여 먹는 기분은 단순한
미각의 만족을 넘어 추수 감사 의식과 같이 신성한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




길고 험한 길



멋지도다 그 길이여,
강과 산과 들과 함께 춤추니.

겸손하도다 그 길이여,
먼저 자리잡은 만물에 양보의 미덕을 지키니.

지혜롭도다 그 길이여,
호기심 가득한 용자에게만 자신을 내어주니.

의롭도다 그 길이여,
은둔자의 자유를 성가심으로부터 지켜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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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곧은 길이 닦여지면서 세상은 혼탁하게 섞여 갔으며,
욕심 많은 자들은 앞다투어 보물 찾는 길을 나섰다.

산천초목은 두려움에 떨다가 하나 둘 사라져 갔고,
은둔자들은 몸과 마음의 병마에 부스럼 난 모습으로 변해갔다.

신대륙엔 구대륙의 오물이 자리를 잡았고,
티벳의 신비와 성스러움을 때족의 돼지우리가 밀어내고 있다.

구룡령 너머 갈천은 더 이상 나의 낚시터가 아니며,
티벳으로의 여행은 나의 꿈에서 희미해졌다.

나는 나의 세계 밖으로 나오기 싫어졌다.

(칭짱 철도 건설에 붙여서)

노렐코와 사바 풀레인지 비교 청취


노렐코 AD9710M
1954년 제작, 8.5인치
상세 정보 : http://www.enjoyaudio.com/xe/?document_srl=1716882&mid=fullrange&listStyle=&cpage=
http://speaker.kir.jp/hoka-f/monito-8.htm


사바 19-200 5298 U8
1955년 제작, 8인치
관련 정보 : http://home.arcor.de/pfaue/klangkue/gruenwunder/galerie/saba_r_20_02/saba_r_20_02.htm
http://www.ceres.dti.ne.jp/~takojin/Speakers/SABA.htm
http://methe-family.de/sabacello.htm
http://www.butterfly-reso-speaker.de/butterfly-de.htm
http://www.jogis-roehrenbude.de/LS-Box/Saba-Box/Bo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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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음반:

Carol Kidd - All My Tommorrows
Simon & Garfunkel - Pack 20
이승철 - Part 2
정태춘 박은옥 - 발췌곡집 1
Rod McKuen - Greatest Hits
Stockholm Guitar Quartet - Transkriptioner
The Romeros - King of Spanish Guitars
Jim Hall - Concierto
Itchak Perlman - First Recital
Glenn Gould - The Legacy vol. 3
Erik Satie - Erik Sa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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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며칠 전에 구한 노렐코 스피커를 들어보는 날이다.
원래 사바를 장착해서 쓰던 300리터 용적의 대형 캐비넷에 조심스레
붙였다.
첫 곡을 듣는데, 고역이 좀 어수선하고 외치는 듯 강한 소리가 난다.
흔히 들어온 듀얼 콘 스피커의 특성.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와는 궁합이 아닌 것이 단번에 드러난다.
마그나복스의 6BQ5 싱글 엔디드 진공관 앰프와 다시 바꾸어 연결한다.
음~ 같은 시절 한 동네 출신이라 그런지 찰떡궁합이다.

사바가 시골의 콧대 높은 귀족이라면, 노렐코는 신나게 놀 줄 아는
팔팔하고 솔직 해 보이는 한량이다. 모자라는 듯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려서 들려주는 것이 사바라면 노렐코는 먹음직스럽게 꽉 담아
주지만 어떤 맛은 다른 맛에 눌리기도 하며, 눈을 감고 듣다가
뒤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 사바라면 노렐코는 사지를 흔들며
함께 놀자고 한다.

노렐코 만큼 고역 재생 능력이 있는 풀레인지 스피커는 보지 못했다.
"짐 홀"의 판에서 "스티브 갯"의 드럼 다루는 모습이 그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험은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피아노의 고역 배음이
한껏 살아나서 마이크가 놓쳤을 법한 소리까지 다시 만들어 내는
느낌이라 타건 마디마디가 새로운 느낌과 냄새가 훅하고 느껴진다.
"로드 맥쿠엔"의 "If You Go Away"에서는 숨소리에 담긴 감정이
애절하게 풍겨나오고, 정태춘의 목청에선 진돗개와 된장 냄새가
풍겨온다.

단점이라면 소리가 많고 풍부해서 현악이나 플라멩코 기타같이 
표정이 많은 곡은 좀 어수선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과 플라멩코와 
클래식 기타 협주의 라이브 녹음에서 악기 간의 위치 감각이 예리하게
포착되지 않는 점이다. 그러나 주 악기가 돌아가면서 나오고 총주가 
적은 "짐 홀"의 연주에서는그런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노렐코는 피아노와 드럼이나 보컬, 그리고 팝송이나 재즈가 특히
잘 나온다. 거친 음의 표현도 걸쭉하고 생동감이 있어서 흥이 쉽게
오르고 함께 장단을 맞추게 된다.
상대적으로 단정하고 고역이 좀 모자란 대신 중역이 특히 단단하고
저역도 깔끔한 사바는 쉽게 몸 장단 흔들게 되지는 않지만, 집중해서
듣다 보면, 주된 음의 주변에서 숨어있는 듯 절묘하게 조화를 맞추는
다른 음들의 오케스트레이션에 감탄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지만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선뜻 보여주지는 않는
도도한 매무새가 있어서 아무하고나 친해지지는 않는 낯가림이 있다.

노렐코가 대단한 스피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바를 밀어내고
나의 안방을 차지할 만큼은 아직 나를 홀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바보다는 노렐코에 더욱 매력을 느낄 것이다.
조금 더 건넌방에 살게 하면서 뜻밖의 냄새가 더 숨어 있는지 가끔
살펴보련다.

잊지 않게 하나 더 덧붙이자면 노렐코는 고음부의 청취 각도에 따른
지향 특성이 매우 예리해서, 스피커의 각도 조절이나 청취 위치 선정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다음날 추가 비교 청취 소견 :

노렐코와 마그나복스 앰프의 조합은 싱글 드라이버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보기 힘든 광대역과 매끈한 소리를 만든다. 그 소리의 장점이 갖는 성향은
흡사 알텍 계열의 성향과 흡사하며 질적으로도 상당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필요하다면 알텍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다. 한편, 풀레인지로서 사바의
소리는 달리 대신할 수 있는 소리가 없어 보인다. 호불호를 떠나 "그 특징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노렐코와
사바의 승부는 분명해진다.

할머니



오늘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꼭 44년이 되는 날이다.

다 낫지 않은 감기와 바깥 일의 피곤함도 하나 내색지 않고
아내는 할머니의 제사상을 차렸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도, 한 번도 빠짐없이 조부모와 아버지의
제사를 소홀함 없이 모시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내 마음을
떠난 적이 없다.

나에게 인간으로서의 훌륭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할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부터 온 배움의 덕이 가장 클 것이다.

"아이구 내 새끼!"가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 전부로 기억에
남듯이, 할머니께서는 말씀이 거의 없으셨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의 할머니의 모습과 행동은 4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사상 뒤에 모셔진 사진의 할머니 모습은 살아계신 동안의
한결같은 모습 그대로 이시다. 해도 뜨기 훨씬 전 부뚜막의 불들을
다 들여다보시고 부엌 일들과 몸을 씻는 일을 마치신 후에는
참빗으로 머리를 가지런히 하시며 터럭 하나라도 흐트러질까
밀랍을 매겨 쪽을 지신 그 모습은 밤에 자리에 드실 때까지
변함이 없었듯 오늘도 그대로 사진 속에 살아계신다.

끼니 사이에 잠시 들일을 다녀오시는 중에는 두렁과 길옆의
나물과 나무의 새순 등을 한 줌씩 뜯으셨고, 논 옆에 난
작은 수로의 수초에 바구니를 밀어 넣어 톡톡 튀는 새우를
한 끼에 넉넉할 만큼 잡아서는 텃밭의 채소와 아울러 순식간에
더없이 맛있는 상을 차려주셨다. 신기한 것은, 매 끼니가 끝난
밥상엔 남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아무도 음식의 부족을
탓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남는 반찬이 없으므로 다음번
밥상 역시 늘 새롭고 신선한 반찬으로 채워져 있었다.

할머니께서 담그신 술과 식초는 동리에서 최고로 손꼽혔는데,
술을 좋아하기도 하셨던 할머니께서 고단함을 달래시는 술을
한 종지 드실 때에는 나에게도 간장종지 바닥을 살짝 덮을
만큼 나누어 주셨고, 찌꺼기로 남은 술은 부뚜막 옆
식초단지에도 늘 조금씩 넣어주셔서 식초 씨의 숨이 죽지 않고
잘 살아서 좋은 식초 맛을 잃지 않게 하셨다. 식초가 상한 다른
집에서는 늘 식초의 씨를 얻어 갔지만, 어느 집에서도
할머니의 식초보다 맛있는 것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혹시 어딘가 묻어서 남은 밥알은 하나라도 보이면 풀 주머니에
모으셔서 할아버지의 근엄한 의복에 먹이는 풀로 쓰셨다.
뿌연 뜨물이나 설거지 물은 절대로 그냥 버리시는
일이 없었는데, 뜨물은 요리에 설거지 물은
부추 등이 심어진 텃밭에 뿌려서 거름으로 쓰임이 있게 하셨다.

덥거나 뜨거운 물은 꼭 식은 다음에 버리셨는데, 땅이나
도랑에 사는 미물을 상하게 하는 것은 큰 죄라고 믿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께서 이런 믿음은 물론 현명한 생활과 습관을
어떻게 배우고 익히셨는지까지는 들을 기회가 없었다.
할머니께서는 학교에서 배울 기회가 전혀 없으셨으며,
달리 종교라고 할만한 것을 믿지도 않으셨다. 아마도
할머니의 모습이 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듯 할머니의
할머니께서 그러하셨으리라.

내가 거의 맹목적으로 한국적인 것에 대해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데는 할머니의 음식 맛과 할머니의
사시는 모습이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나의 한가운데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을 장만하기에 비용과 수고가 더욱 많이 드는
외국 생활임에도 우리 집의 저녁 밥상은 거의 순 한식이다.
나에게 있어 할머니의 맛이란 내 것에 대한 사랑과 긍지를 잃지
않게 하는 끈이 되듯, 같은 일이 우리의 아들들에게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에서 마다하지 않는 아내의 배려이다.

오늘도 끝난 제사상 머리에 앉아 아들은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다. 아들은 맛있는 여러 가지의 전통 음식과 지나간
가족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제사를 좋아한다.
결혼을 할 때에는 제사에 담긴 가족 사랑을 이해하고,
그래서 제사지내는 우리의 전통을 존중하며 꼭 지킬
여자를 가려 택하겠다 한다.

아들의 모습을 보는 아내의 얼굴에 제사를 받드는 보람이
활짝 핀다.

제사의 참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고 행하여 지키는 가정이 늘어나서
아들의 세대에서도 제사가 낯설거나 희귀한 풍습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향



내가 태어나기 몇 해 전부터 우리 집은 뚝섬의 새촌이라는 곳에 있었다.

아버지께선 전쟁에서 입은 사회적 상처 때문에 대졸 학력임에도 변변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고, 그래서 가계 부담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행당동에 있는 학교로 발령나셨고, 그래서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뚝섬으로 집을 정하시게 되었다.

새촌의 남쪽으로 탐스런 오이가 가득 달린 밭 옆 길을 따라가면, 이따금 서리하러 가기도 한 딸기밭과 원예원을 지나고, 새촌 서쪽 건너의 경마장 사이를 돌아온 큰길을 만난다. 그 길가에는 수창상회라는 오래된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맛볼 수 있는 빙과와 사탕은 강으로 바람쐬러 가는 길을 재촉하는 꼬드김이 되었다.

장마 때마다 물이 흘러드는 것을 막아주는 수문은 둑을 질러 굴 같이 나 있었는데, 강바람이 선선히 드는 그늘진 통로는 한낮의 더위를 피한 노인들과 살찐 아주머니들의 단골 쉼터였다. 나는 굴보다는 둑을 넘어 강으로 가기를 좋아했는데, 푸르고 짧은 풀이 빽빽이 덮인 둑에서 풀을 뜯는 염소를 놀리는 재미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염소는 순해서 만져도 크게 거스르지 않지만 때로는 머리를 앞세우며 달려드는데, 그런 염소를 피하며 골난 모습을 보는 짓궂음 다음에는 까닭 모를 홀가분함이 가슴을 채웠다.

강둑의 중간 턱에 잇대어 늘어선 작은 판잣집들은 별 재산 없이 흘러들어온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는데, 둑의 중간 높이에 난 길을 마당 삼아 노는 어린 아이들과 집안일을 꾸려가는 그곳 사람들에게선 끈끈한 내음과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느껴졌다. 내 또래 아이의 손을 따라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지붕 밑 납작한 방은 한 부분의 투명한 플라스틱 골판에서 들어온 햇빛으로 밝고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강가에 제법 굵은 돌들이 널린 곳은 쪼그려 앉아 방망이질하며 빨래하는 아주머니들의 차지였고, 따라나온 아이들은 그 바로 윗물의 자갈밭에서 다슬기를 잡거나 서로 물을 끼얹고 도망가는 물놀이를 했다. 그보다 좀 더 떨어진 자갈밭에는 틀을 열 개씩이나 펼친
방울 낚시꾼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키 높이 되는 대나무 손잡이의 쏠채로 떡밥 덩이를 보이지 않을 만치 멀리 던지는 힘찬 모습은 호기심 가득한 나의 눈을 한참씩 잡아 놓곤 했다.

드물지만, 장마로 불었던 물이 내려앉은 자갈밭에는 연고자가 나서지 않은 익사 시신이 있기도 했는데 거적 밖으로 삐져나온 검게 부푼 손발과 푸석하게 엉킨 머리카락을 보면 무서움과 동시에 가려진 얼굴과 사지도 마저 보고 싶은 묘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보다 윗물로 가서 유원지 아래엔 장어구이 집이 여럿 있었는데, 얼굴이 기름지고 살집 있는 아저씨들이 검은 코로나를 타고 와서 불그레한 얼굴로 한담하는 모습이 보였다. 양념을 거듭 발라가며 숯불 화로에 장어를 굽는 냄새는 지날 때마다 침이 나오게 하며 배고픔을 더해 주었다.

장어구이 집과 유원지 사이에는 강 건너 범바위에 내려 건너 봉은사나 압구정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짐을 내리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람, 소 마차 짐을 가득 실은 배가 가라앉지 않고 뜰 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범바위에서부터 논밭 곁으로 난 길을 가면 봉은사가 나오는데, 휴일이면 돗자리에 올린 앉은뱅이 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절밥을 맛보는 가족 나들이로 절 입구의 나무 그늘이 채워지곤 했다.

유원지의 높고 큰 나무 그늘 여기저기엔 한두 무리의 노인들이 술과 음식을 가지고 둥글게 모여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와 춤으로 흥을 태우곤 했는데, 새하얗게 탈색한 모시옷을 입은 노신사가 취기로 붉은 얼굴에 비장한 기가 감돌도록 춤사위를 잡으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오곤 했다. 다른 한쪽 구석에선 한여름에도 검은 긴 소매를 입은 장발의 젊은 두 청년이 기타를 두드리며 서양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장난으로 구걸하는 모습도 보였고, 높은 그네에 올라 힘찬 지름으로 높이 가르며 뽑내 즐기는 남녀노소의 펄럭이는 옷자락도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그중에서도 공기총을 나무 위로 겨누어 잡은 몇십 마리의 참새를 꿰미에 엮어 자랑스럽게 허리춤에 매단 아저씨들은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간 언젠가 유원지 위로 강을 가로질러 다리가 놓였는데, 그 이후로 유원지는 모습을 빠르게 잃어갔으며 건너편에 보이던 범바위도 다리 밑으로 찌부러져 이전의 신성한 모습을 잃었다. 강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갔으며, 그나마 오는 사람들도
먼 곳에서 어쩌다 오는 사람들로 서로 어색한 분위기만 감돌기 시작했다.

우리 집도 강 건너 아래의 논현동으로 이사했는데, 낚시에 맛이 들은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간 탄천과 만난 상류의 잠실 여울에서 견지낚시와 루어낚시를 해서 쏘가리, 끄리, 모래무지, 마자, 누치 등의 강고기를 한껏 잡곤 했다. 그때까지도 제방 너머 밭에서 서리한 애호박과 강고기로 갓 끓인 천렵 국을 지나가는 어린 낚시꾼에게 권한다든가, 모자란 낚시 도구를 빌려주는 등의 강변 인심은 여전했다.

어느 틈엔가 잠실교에 이어 포장된 대로로 갈라진 막힌 물길은 쓰레기로 메워지기 시작했으며 호박밭은 밀려나고 아파트라 불리는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린 낚시꾼에게 옆의 물골을 양보하여 살펴주던 인자함도, 남이 낚시하는 아랫물에 말없이 들어가지 않는 예의도, 지나가는 낚시꾼에게 천렵 국을 권하던 다정함도, "무엇무엇 했습죠"하고 말하던 강가 토박이의 수줍은 사투리도 사라져갔다. 강물이 내음과 빛을 잃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이다.

좀 더 나이가 들면서 먼 상류의 덕소, 팔당, 양수리, 양평, 여주 등의 강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도 더 어렸을 때 마음에 담긴 강의 모습을 되찾아 보려 한 순례의 행로였으리라. 황산에서 팔당으로 걸어가던 중 경안천 다리 위에서 보는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커다란 고기의 천연덕스런 무리와 그들을 또렷이 보여주던 맑은 물, 도곡리 앞 검은 바위틈에서 미끼를 따라 불쑥 튀어나온 꺽지, 자신의 견지가 더 잘 잡힐 테니 써보라고 빌려주신 모르는 아저씨의 너그러움, 그 낚시를 여울에서 물고 나온 큰 누치, 양수리 합수 머리의 넓고 하얀 자갈밭과 힘찬 바디끄리의 유영, 여주의 그윽하고 시적인 모래여울.....이런 것들이 어린 날의 정감과 풍경을 살려주거나 새로움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이내 그들도 인간의 욕심이 만든 세월에 하나 둘 사라져갔다.

남아있는 정경과 인정이 없다면 그 자리로 되돌아가보는 것이 실망 이상 무엇을 되돌려 줄 수가 있을까? 나의 실향은 돌이킬 수 없는 슬픈 아픔이다. 단지 장소를 떠난 아픔이 아니라 시간의 저쪽에 모든 것이 묻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영원히 남기를 바랐고, 그들의 빛이 바랠 때마다 한없는 아픔이 가슴을 도려냈다.

이제 그 강가는 시멘트 조경으로 바뀌고 바퀴 달린 장난감을 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놀이터가 되었다.

내겐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없다.

한강



내 젖어미 한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른다.

이놈 저놈에게 겁탈당한 모진 세월

상처의 신음도 없이 억울한 외침도 없이 흘러간다.

달빛 받아 곁에 비추어 주는 하얀 강변의 자장가도 없이

함께 따라 흐르는 모래의 속삭임도 없이

겁탈의 상처를 지고 느리고 힘겹게만 흘러간다.

허리를 간질이며 놀아주던 온갖 빛깔과 생김의 바위들

노래를 함께 불러 달라고 칭얼대던 여울목의 자갈들

모두 다 떠난 지금, 더럽혀져 냄새 나는 몸을 이끌고

외롭게 지쳐서 흘러간다.

좋은 벗들과 아름다웠던 옛날만 되새기며 흐르는

내 젖어미는 한마디의 말도 없다.

용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침묵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