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3일 목요일

스콧 니어링 자서전



"스콧 니어링 자서전"의 원제는 "The Making of a Radical"이다. 원제를 한글로 번안한다면 "어떤 진보주의자의 생애"가 오히려 적절할 듯하다.

남의 사상이나 인생관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서 이 책에 손을 댄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자연 친화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공동체 삶을 계획하는 친구가 권하며 빌려주는 바람에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의 사회적 가치관과 그 가치관 그대로의 실천적 삶에 강하게 교감하여 단숨에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883년에 태어나서 경제학자가 된 저자가 미국의 사회 경제적 변천에 대해 비판을 갖게 되는 과정과 그 비판적 결과로서의 신념을 삶에서 지켜나가는 역정을 기록한 것으로 함축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 가속된 공업화와 자본의 독점은 자본과 정치의 상호 의존적 부패와 타락으로 이어지는데, 착취당하는 아동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등 사회적 정의를 앞세우는 분배 경제론을 주장한 저자의 활동은 자본가와 정치 세력의 탄압을 받게 되고 이어서 대학의 강단에서 강제로 밀려나게 된다. 그 이후 저자는 부패한 경제 사회적 구조에 굴복하지 않으며 정의와 신념을 지키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체적, 자급자족적, 자연친화적 삶을 손수 일구어 나가는데, 이 자서전은 그러한 과정의 후반기인 80세가 넘어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 보며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의 초점이 되는 시대와 사회 현상은 공업과 자본의 가속화가 한창인 19세기 말 이후이다. 급속한 공업의 성장은 자본과 사회 권력의 독점화와 대량 생산 체계, 나아가서 생산의 잉여를 낳게 된다. 미국은 때맞춰 발발하는 1차,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과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변천은 사회적 도덕이나 양심, 또는 국민의 고른 행복을 도외시하는 과정이 되며, 자본과 정치의 결탁과 소수 독점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부패를 저지른다. 나아가 그들은 그들의 결탁과 부패를 비판하는 진보주의나 사회주의 세력을 박멸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총체적인 시대 변화와 문제의식은 한국전쟁 이후 현재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상황과 매우 유사한바, 이 책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과 미국이라는 두 국가의 사회 경제적 변천과 그 변천의 인과 관계 그리고 당면하는 사회문제가 나란히 겹쳐서 떠오르며, 경제학자인 저자의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저술 당시 저자의 나이는 80을 갓 넘었는데, 그 이후에도 저자는 미국 동북부 메인 주의 시골에서 앞서 말한바 주체적, 자급자족적, 자연친화적 삶을 지켜나가다가 100살이 된 1983년 더는 일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먹기를 멈추고 스스로 세상을 하직했다.

도덕과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이루려는 작가의 신념도 높이 존경스럽지만 그러한 신념을 죽는 그 순간까지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의 위대함과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대해 보이는 생각은 수도 없이 많으나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인생에서 구체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한 사람의 이야기를 당신은 몇이나 알고 있는가?

"사회 정의와 가치있는 삶"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