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월 15일 토요일
LOCAS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던 중, 간결하면서도 상황을 재치있게 표현하며 표정과 몸짓이 살아있는 그림에 반해 이 책을 빌렸다. 만화라고만 부르기엔 통념상의 만화와는 현실감과 표현상의 격조에 차이가 있어서, 다른 서평에서 부르듯 "graphic novel"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
매기와 호피라는 두 젊은 여자 펑크족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은 것인데, 우리 문화와는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상당히 와 닿고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태도에 자연스레 공감이 간다. 그림에 있어서는 흑백의 선과 명암으로 간결히 표현된 얼굴의 감정과 상황 표현을 느끼는 재미가 있으며, 인체의 표현도 현실적이며 매력적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 중 절반쯤 읽으니 매기와 호피에게 마치 친구나 애인에게 느낄 감정이 생긴다.
작가인 하이메 헤르난데즈(Jaime Hernandez)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1959년생인데, 미국 LA 남부에서 태어났다. 만화광이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만화를 즐기는 환경에서 성장했고 대학에서는 정규 드로잉 공부를 했다. 다른 두 명의 형제와 함께 일 년에 걸쳐 작업한 38페이지의 첫 만화를 선보인 것이 1981년인데, 그 이후 계속된 연재 발행물이던 "Love and Rockets"의 "Hoppers 13" 시리즈 등 매기와 호피의 이야기만을 모아서 2004년에 발간한 것이 "LOCAS"이다.
펑크라 하면 기이하고 도발적인 복장과 헤어스타일, 인종차별적이거나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흔히 떠올린다. 그러나 실상 1974년-1976년 시기에 태동한 펑크의 기본은 기성 문화에 대한 반발이다. 당시 기성 문화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반발을 태도와 행동으로 표현한 것일 뿐, 그 자체에 선악에 대한 개념의 도착이나 양심의 혼동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책을 보다 보면 펑크 문화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이 고쳐지며, 펑크 문화도 시대와 공간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 중 하나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사나 설명에 쓰인 영어는 그리 어려운 단어나 문법은 없지만 1980-2000년경의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의 언어이므로 세대 감각을 거기에 조율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조율하여 느끼니 그 시대의 청년기로 돌아가 여행을 즐기는 듯 신선한 느낌과 이야기에의 참여 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상 대화에 쓰이는 영어의 단순함과 함축성에 대한 느낌을 잡기에 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드물 듯하다.
이십 대 초반에 감명을 느끼며 본 "영원한 꽃샘"이라는 공상과학 만화 이후, 유사한 표현 장르로서 가장 큰 즐거움을 선사한 책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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