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일 토요일

작은 횡재

어제는 월요일이라 가게를 닫는 날이었다. 바람도 불고 주치의와의 약속도 있는데다 일하는 데 필요한 물건도 좀 사야겠어서 낚시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시내를 다니며 일을 보았다. 그런 날이면 종종 구세군 자선 중고품 점에 들러 새로 흘러나온 중고 판이 있나 확인한다. 두 곳의 매장에 들러 17장의 판을 구해서 열심히 닦고 흥분된 마음으로 들어보았다.

베토벤 전원 교향곡 - 브루노 발터 지휘 콜럼비아 심포니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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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상태도 좋고 소위 "여섯 눈" 콜럼비아 판이라 집었다. 음반에 붙은 둥근 레이블에 사람 눈 모습의 콜럼비아 로고 여섯 개가 인쇄되어 있어서 "SIX EYE COLUMBIA"라고 불린다. 유명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도 같은 "여섯 눈"이다. "콜럼비아의 HiFi 음반은 모노라도 스테레오 기기로 재생하면 더 충실한 소리가 나게 하였으므로 시대 변화에 대한 걱정 없이 구입해도 된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종류 음반의 충실도 높은 소리를 듣고 보면 그 말이 단순한 상업적 치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테레오와는 달리 모든 음이 스피커 사이 공간의 중심에서 나오므로 무대의 옆에서 듣거나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 느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음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헥터 베를리오즈의 해설이 인쇄되어 있어서 음악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2 악장 해설을 예로 든다.

"베토벤의 명상에 바쳐진 악장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베토벤은 시냇물 가의 풀밭에 기대 누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천지 만물의 오묘한 광채과 음향에 눈과 귀를 영민하게 열고 이 악장을 지어냈다.......중략........ 이 얼마나 맛있는 음악인가!"

베를리오즈의 이러한 해설을 읽으며 듣노라니 베토벤이 보고 느꼈을 법한 유럽 농촌의 풍경과 자연의 변화가 눈 앞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데이브 브루벡 - 1958 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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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음반과 같은 "여섯 눈 콜럼비아"이다. 이렇게 상태 좋은 음반은 이베이 가격으로 $25-$30 정도이니 75전에 구입한 것은 그야말로 작은 횡재이다. 이 음반은 듀크 엘링턴을 기리려고 색소포니스트인 폴 데스몬드 등과 뉴포트에 모여 연주한 녹음이다. 그래서인지 시종일관 겸손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몰입하는 것이 보이는 연주이고, 화려함과 감정의 과장이 절제된 아름답고 치밀한 연주를 보인다.

스티비 레이 본 - 텍사스 플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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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손에 넣고 싶던 판인데 눈앞에 나타났다. 요즘 복 받을 만한 일을 한 것도 없는데...
텍사스인의 긍지와 텍사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자의식 강렬한 곡이다. 그의 이름난 기타 솜씨와 보컬이 텍사스의 정서를 발휘하기 위해 한껏 바쳐졌다는 느낌이 와 닿는다. 락 음반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하며 들을 수 있는 판이다. 자신의 것을 깊이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예술은 모두 훌륭하다.

줄리안 브림 - 보케리니 기타 오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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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초반에 현대곡이라고 느낄 만큼 기타의 다양한 표현이 살아있는 곡이다. 크레모나 현악 사중주단과의 협연으로 녹음되었는데, 이 음악을 듣던 중, 슈베르트 송어 삼 악장의 동심원으로 번지는 물결과 송어의 약동하는 모습을 기타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푼돈으로 건지는 행운이 매일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이런 행복감만큼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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