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lektogon 2.8/35 렌즈를 장착한 소니 디지털 카메라 |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는 더 설명이 필요없는 일이다. 그러나 노출과 초점을 일일이 조정해야하는 등 성가신 수동 렌즈를 왜 사용하는가?
그러한 작동 상의 성가심보다는 다른 즐거움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 최소한 나에게는.
폭이 넓은 배는 잘 뒤집히지 않는데 반해 저어나가기에 힘이 많이 들며, 폭이 좁은 배는 저어나가기엔 힘이 덜 들지만 기우뚱거리며 쉽게 전복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렌즈도 각각 특성과 장점이 달라서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렌즈의 발달 역사를 보면 밝기, 해상도, 왜곡, 수차, 색상 처리, 화상의 제시 성향 등등의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보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동시에 완결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특정한 개선은 그러한 문제 중 몇가지만을 중점적으로 해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17년 "니세포르 니엡스
(Nicéphore Niépce)"가 자작 소형 카메라로 광화학 반응에 의한 사진을 인류 최초로 얻어낸 이래, 사진에 관련된 여러가지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해왔다. 그 중 렌즈 역사의 가장 큰 전기는 1893년 볼록, 오목, 볼록 순서로 세 개의 렌즈를 배치한 "트리플렛"(triplet, Cooke triplet))을 "Dennis Taylor"가 개발한 것일 것이다. 트리플렛은 초점이 또렷하게 잡히지 않는 "난초점 현상" (
astigmatism)을 혁신적으로 개선하여 또렷한 영상을 얻는 성과를 올렸고, 그로 말미암아 사진의 실용성과 상업성이 한층 가속되었다.
 |
트리플렛 |
트리플렛이 혁신적인 진보이기는 하였으나 종합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그 후 9년만에 또 한차례의 커다란 진보가 있었으니, 바로 1902년 짜이즈 회사에서 일하던 물리학자 "폴 루돌프
(Paul Rudolph)"에 의한 "테사"의 개발이다. 테사는 화상의 왜곡과 수차를 더욱 개선하였고 그 뛰어난 해상력으로 "독수리 눈"이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리기도 했다. 일반적인 성능이 충분할 뿐아니라 단 4개의 렌즈만으로 제작되어 경량화와 원가 상 이점이 있어서 현재까지도 보급형 렌즈에 실용되고 있다. 테사라는 이름은 렌즈가 네 개라는 의미에서 그리스어의
τέσσερα (téssera, four)에서 따온 것이다.
 |
테사 |
그러나 트리플렛이나 테사 디자인에 대구경 렌즈를 적용하면 해상도와 수차 등의 성능 저하가 생겨서 렌즈 밝기의 한계는 1:2.8 정도였다. 또한 테사는 화면 중심부 해상도는 매우 좋지만, 조리개 개방 시 화면 주변부의 해상도가 저하되는 난점이 있으며 모든 종류의 왜곡과 수차가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테사의 미흡한 점으로 "존나(sonnar)"와 "플라나(planar)" 계열의 개발이 촉진되었다.
명칭의 이해를 위한 사족을 붙이자면, 테사, 존나, 플라나 등은 짜이즈에서 명명한 렌즈의 이름으로 각각 다른 구조와 특성의 분류를 형성하는데, 각각의 렌즈 제조사 마다 그와 유사한 렌즈의 그룹이 있으며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구분하고 있다. 예컨데, Leitz의 Elmar, Voightlander의 Color- Skopar, FED의 Industar 등은 테사 계열이며, Leitz의 Xenon이나 Summicron은 "더블 가우스" 디자인인 플라나 계열이다. 여기서 테사니 존나니 하는 고유 명사를 일반화하여 쓰는 까닭은 짜이즈의 렌즈 개발 역사가 보다 선도적이고 그들이 명명한 이름들이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기에, 설명의 편의를 취하기 위함이다.
존나는 1924년 "루트윅 베르텔레 (Ludwig Bertele)"에 의해 개발되어 "짜이즈 이콘" 사의 특허로 등록되었다. 빛을 더욱 많이 받아들여서 모으기 위한 대구경의 볼록 렌즈를 테사의 기본 얼개에 추가했다고 보면 된다. 존나 계열의 밝은 렌즈가 등장함으로써 빠른 셔터 속도와 어두운 환경에서의 촬영이 더욱 가능해졌다. 존나는 밝다는 것을 뜻하여 태양을 뜻하는 독일어 Sonne에서 따온 이름이다.
 |
존나 |
렌즈 전반부 구조를 뒤집어서 후반부에 배치하면 렌즈 전체의 수차와 왜곡이 현격히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러한 발견을 실용한 디자인을 "더블 가우스"라 한다. 짜이즈 회사에서 화면 전체의 왜곡과 수차를 줄이고 화상의 중심부와 주변부 모두에 걸쳐 초점의 변화나 직선성 왜곡이 최소화된 화상을 얻으려 개발한 제품 군이 있었으니 바로 플라나(planar)이다.
예컨데, 건축물의 직선 부위가 휘어지는 왜곡이 없이 촬영한다든가 한 평면이 균일하게 초점이 맞고 고르게 묘사되도록 하는 점 등이 플라나의 개발 목표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플라나"라는 이름도 "평면" 또는 "평탄"을 뜻하는 독일어에서 따왔으며, 필름 면 전체에 고르고 정확한 상을 맺는 렌즈의 개발 의도를 담고 있다.
"폴 루돌프"는 테사를 개발해내기 5년 전인 1897년 이미 플라나를 개발해 놓은 상태였다. 플라나는 왜곡이나 수차의 면에서 전반적으로 우수했으나, 여러 겹의 렌즈 표면에서 생기는 반사광으로 인한 빛 번짐 현상과 명암이 떨어지는 단점때문에 그리 선호되지 못하는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935년 짜이즈 "T 코팅" 개발과 1950년대 다층 코팅 기법의 적용으로 그러한 단점이 보완되면서 보편화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실용되는 렌즈의 주류를 차지하는 디자인이 되었다.
 |
플라나 |
테사, 존나, 플라나 등의 렌즈는 각각 다른 문제점의 인식과 목표에 따라 개발되었기 때문에 장단점이 서로 다르다. 이러한 장점과 단점은 목적하는 사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즉, 대상물이나 환경과 조건, 그리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최적인 렌즈는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각 렌즈의 고유한 역사와 특성 및 차이를 알고 이해하여 즐기며, 그러한 지식을 잘 활용하여 결과적으로 작품의 질적 향상과 개성적 표현을 꾀하고 성취감을 얻는 것, 또한 모든 과정에 걸쳐 지적이며 창조적인 만족감을 얻는 것 -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궁극적인 취미로서 사진찍기를 즐기자면 단초점 수동 렌즈 사용은 나에게는 당연한 선택이다.
고려해야 할 렌즈 계열 별 특성은 간략히 다음과 같다.
테사 - 렌즈 수효가 적어 가격이 저렴하며, 렌즈 표면 반사에 의한 명암 손실이 적어 또렷한 화면이 나온다. 중심부 해상도는 태생적으로 뛰어나다. 조리개 개방 상태에서 주변부 해상도와 수차 특성이 떨어지지만 조리개가 f8 이하로 조여든 상태에서는 훌륭한 해상도와 수차 특성을 얻을 수 있다. "초점 외 부분의 묘사(일명 보케)"도 보기가 좋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어두운 렌즈라 다소 사용 제한이 있다.
존나 - 일반적으로 밝은 렌즈가 많고, 조리개 개방 상태에서의 해상도는 테사보다 낫다. 보기 좋게 느낌이 부드러운 보케를 보여준다.
플라나 - 열거한 세가지 중 가장 밝은 렌즈를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이다. 조리개 개방 상태의 해상도는 가장 좋고 왜곡과 수차 특성도 가장 뛰어나다. 그러나 보케는 명암 교차가 어지럽고 보기에 좋지 않다. 렌즈 수효가 많아서 표면 반사의 악영향을 줄이려면 렌즈 표면 코팅이 좋아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자연 풍경을 적은 노출로 촬영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테사 계열로서 20불 이내로 구입할 수 있는 구 소련제 "Industar 50-2" f3.5/50mm 렌즈로도 어느것에 뒤지지 않는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으며. 조리개를 활짝 열고 초점 심도를 낮춰서 초점 범위의 주제인 인물이나 꽃만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부드럽게 배경처리 하자면 존나 계열로서 f2.0/85mm인 구 소련제 "Jupiter 9"이나 f2.8/135mm인 구 동독제 Pentacon 렌즈를 써서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넓은 화각 내의 인공 구조물을 왜곡과 수차 없이 선명하게 묘사하려면 f2.8/37mm로서 화각 확장용 오목 렌즈 뒤에 플라나 계열의 기본 구조가 있는 구 소련제 "Mir-1" 또는 구 동독 "칼 짜이즈 예나"에서 제조한 f2.8/35mm의 Flektogon 렌즈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2012년 초 이베이 가격을 기준으로 "주피터 9"은 150불, 펜타콘은 80불, Mir-1은 75불 정도에 상태 양호한 렌즈를 구할 수 있는 바, 일세를 풍미하던 명품 렌즈들이 카메라에서 이탈되어 헐값으로 시장에 돌아다닌다.
"가변 초점 렌즈"(일명 줌 렌즈)로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목적에 맞춰 최고의 성능을 갖춘 것이라면 가격이 너무 비쌀 뿐아니라, 무게나 크기도 상당하고, 제각각의 주제와 표현에 맞게 렌즈의 장점과 개성을 살려 사용할 만큼 선택 범위가 넓지도 않다.
 |
Flektogon 2.8/35, Sony A100 -- 화면에 클릭하면 확대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