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일 토요일

청나라 왕실의 조상은 한반도로부터

이전 글 어디선가 만주 및 청나라의 지배 세력의 한반도 기원 설이
확인된 정설은 아니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청나라 건륭 황제 명으로
저작된 "만주원류고"는 물론 중국 정사서로 인정된 24서 중 하나인
"금사"에 그들의 기원이 한반도에서 왔음이 명시되어 있음을 증거와
함께 보여주는 유튜브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이 내용 중 "Jin Dynasty"는 한국에서 칭하는 "금"과 "후금"을 말하므로
"晉 왕조" 또는 "秦 왕조"와 혼동하시면 안됩니다. 청나라 왕실 성
애신각라(愛新覺羅)는 원래 여진 식 발음인 "아이신줘러"의 한자
표기인데, 여진말 "아이신"은 금을 뜻하고 "줘러"는 종족 또는 겨레의
뜻으로서 "김씨족"의 여진식 표시이면서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라"
라는 두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현재의 이들 후예는 거의
김씨 성을 씁니다.

삼국 통일 때 고구려가 당에 넘어가면서 우리 종족의 영역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그 이후 다시 회복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유교와 중화 사대에 찌든 조선 왕조는 고조선 이래
민족 역사의 계승자이기보다는 자신을 유교의 계승자인 "소 중화"로
깊게 착각하고 근친 민족들을 이질적인 오랑캐로서 격하하여
기회를 지금껏 놓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저의 역사관입니다.

같은 원리로, 현재의 우리가 역사의식을 망각하고 북한 마저 도외시
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또 한번 크게 작아질 것입니다.




"아이신 줘러"라는 여진 발음을 나타내는 한자를 갖다 붙일 때, 같은 음과
좋은 뜻을 갖는 한자는 상당히 많은데 왜 굳이 愛新覺羅라는 네 글자를
선택했겠는가 하는 것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물며 아들의 이름을 짓는데도 많은 생각을 하는데, 주변 집단과 관련해서
의미가 생길 수 있는 글자를 함부로 선택할 리 없으며, 그리 선택한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족들이 자신의 기원으로 보는 황하 문명의 황제와 전혀 다른 동북방 부족이
일군 요하문명의 비교에서 요하 문명이 천 년 이상이나 앞섰다는 사실이나
동북아 지역의 국가 변천 과정을 음미하면, 한족에 의한 문명 주도론이
허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주 말살은 중국의 만주국 점령 후 조직적이고 강압적인 문화 말살 정책에
이루어졌으며, 중국의 문화에 만주 문화가 자발적으로 흡수되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국이 현재 강제로 점령한 다양한 모든 문화의 총합이 모두 원래부터
자기네들 것이라 우기니 개별적인 다른 종족의 문화가 작다 할 수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느 종족도 모든 문화를 통합하여 지니고 있지 않으니, 중국 문명
우위론에 의한 흡수론은 다수인 한족이 의도하는 제국주의적 허구일 뿐입니다.

현재의 모택동 중국은 겉으로는 복합 민족 국가관을, 속셈으로는 주변의
국가나 민족을 격하 또는 부속시 하고 한족 중심의 제국관으로 침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티베트와 위구르 등 지역에서 일어나는 민족 차별과 한족 유입에 의한 물타기
및 민족 말살 정책은 중국식 제국주의의 실상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역사관은 현상의 올바른 파악에 불가결한 것이며, 올바른 역사관이 없으면
국가관도 온전하기 어렵고, 국가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자주 국가의
국민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 곡의 나폴리 연가

늙음은 슬픈 것.

새로운 모든 것을 뒤지던 반짝이는 눈은 어디로 갔는가?
샘솟는 피로 부풀어 오르던 밝은 피부는 어디로 갔는가?

오직 남은 것은 꺼질 줄 모르고 불타는 가슴.

늙음은 슬픈 것.

젊은 날의 광택이 사그러진 육신으로 덮어진 가슴은 주기도 미안하다.
윤기 없는 거죽 속 남은 몸부림에 연민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리라.

그래도 삶의 기쁨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이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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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esta che lucive


한때는 빛났으나 지금은 불 꺼진 창 뒤, 병든 내 연인이 있네.

그녀의 누이가 창문 너머로 말해주네. 그대의 작은 연인은 이미 죽어서 묻혔다네.

혼자 잠드는 외로움에 흐느끼던 그녀, 이젠 죽은 영혼들과 함께 잠들었네.


잘있거라 불 꺼진 창아, 영원히 잠겨있으라. 창문에 기댄 내 연인을 더이상 불 수 없으리.

다시는 이 골목길을 걷지 않으리.

결코 무덤을 찾지 않으리, 무정한 죽음이 나를 그녀의 곁에 데려갈 때까지.

한때는 빛나던 창, 이제는 불 꺼진 어둠만 남았네.


Ciove


그대는 아픈데도 노래하네. 그대는 죽어가는 중에도 노래하네.

아흐레나 비는 계속 내려서,

바람은 차고 하늘은 어두워지기만 하네.

그리고 그대, 이 추위에, 홀로 노래하며 삶에서 멀어져 가네.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노래하는 새라네.

그내는 누구인가? 그대는 죽음을 맞아서도 노래를 읊는 새로 태어난 사랑이라네.

무정한 하늘이여, 어찌 비 마저 내리시는가!


그대는 마돈나처럼, 십자가 위에서 마중하는 천사를 위한 자장가를 부르네.

밤에 들리는 고독한 음결.

그리고 그대, 성자 같이, 죽는 그날까지 외롭디 외롭네.


그대는 누구인가? 바로 노래하는 새라네.


Dicitencello vuie


그대 친구에게 말해다오. 잠을 이룰 수 없으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다고.

난 그녀만을 생각하고 있다네. 그녀는 바로 내 생명이네.

그녀에게 직접 말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른다네!


그녀를 사랑하네. 너무도 사랑하네.

그녀에게 말해다오. 결코 떨칠 수 없다고.

쇠사슬보다 질긴 열정은 이 영혼을 괴롭혀서 죽여가고 있다네.


그녀에게 말해다오. 그녀는 화창한 날보다 더 아름다운 오월의 장미라고.

바이올렛보다 더 싱그러운 그녀의 입으로부터,

나와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네.

하워드와 함께 한 ESL-57 감상


"쿼드 ESL 57" 스피커가 집에 들어온 지 두 주가 넘었다.

처음엔 대충 듣다가 처분하려는 생각이었는데, 듣다 보니 점점 좋아져서 시집보내기가
싫어진다.

어제는 푸얼차와 음악을 함께 즐기는 친구인 "Howard Able"(
http://www.howardabel.com/html/about.html )이 집에 들렀다. 작업장에 수리 대기 중이던 스피커를 보고 관심을 보이기에 함께 듣자고 청한 이유도 있지만, 한국식으로 생간을 먹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한 까닭도 있다.

하워드는 이 도시에서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로서 다양한 종류의 음악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전업 연주가와 기타 선생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기름과 소금, 그리고 농장에서 특별 주문한 방목 암소의 간을 한 봉지 들고 나타난 하워드에게 간을 손질하고 썰어 접시에 올리는 것을 보여주고 깨소금을 넉넉히 뿌린 다음, 참기름 소금과 함께 밥상에 올렸다. 물론 소주 한 잔도 곁들여서.

상상했던 맛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다며, 함께 차린 마당에서 갓 딴 상추에 밥과 집된장으로 쌈을 싸먹으며 간 한 접시를 뚝딱 해치운 하워드는 한국 음식의 다양함, 현명함 그리고 그 오묘한 맛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매우 흡족하다고, 그리고 앞으로 생간을 즐겨 먹겠다 했다.

장소를 옮겨 음악을 들었다.

Kenny Drew - Paul's Pal
Clark Terry and Joe Pass - Main Stem, I Can't Sleep Tonight
Herb Ellis and Joe Pass - Seven Come Eleven
Bud Shak, Laurindo Almeida and Ray Brown - Dindi
Billy Holiday - But Beautiful
Wagner / Glen Gould - Meister Zinger Prelude
Wagner / Solti / Vienna State Philharmony - Meister Zinger Prelude

첫 마디의 평은, 마치 현장에서 듣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거의 매일 현장에서 연주하거나 듣는 연주가의 말이니, 보통 사람의 평가보다는 무게가 실린다.

그다음은 중고역의 표현이 아주 섬세하고 다채롭다는 것이다.

관악기에서 마우스피스나 리드의 조절에서 오는 변화라든지, 트라이앵글의 모듈레이션에 의한 음 변화, 드럼 채의 움직임과 치는 위치의 변화에 따른 표현의 차이 등등에서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아주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이다.

들으면서 점점 좋아진 나의 이유와 같은 평가인데, 막귀의 생각에 음악가의 평이 더해지니, 이제 쿼드 스피커의 자리를 영구히 마련해 주어야 하게 생겼다.

자신 있는 표현과 도도함이 있는 "사바", "모든 면에서 내가 표준이야."라고 당당히 외치는 "다인 오디오", 현장감과 표현력의 남다름에서 확실한 자리를 찍은 "쿼드", 이 삼총사에게 골고루 자리를 줄 만한 공간의 여유가 없다는 나는 "아, 어쩌란 말이냐."하는 고민이 절로 나오지만,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고민의 극치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런 상황에 이르니 "Chet Baker"의 "I Fall in Love Too Easily (난 너무 쉽게
뿅 가나봐^^)"라는 노래가 생각난다.